


적구는 임현성남에서 48km되는 황하강변에 위치해 있다.황하제2대적—대동적으로 인해 이름을 얻게 되였다.적구는 청나라 건륭년대로부터 흥기하였는데 그후 200여년간 중국북방의 저명한 상업무역요충지였다.오리장거리에는 점포가 즐비하게 늘어섰고 상인들이 운집하였다.선박들이 황하를 오갔고 낙타방울소리가 산골짜기에 울러펴졌다.경포철도를 건설하기 전까지 170년간 매일 500여척의 목배가 적구부두를 오갔고 많은 양의 식용유,가죽털,약재 등이 섬서,감숙,신강,몽골 등 곳에서 운반되였다.솜,주단,차잎,도자기 등 물품들은 태원,분주 등지로부터 “향양갑”육로를 통하여 적구까지 짐이 운송된다음 대서북지구에 판매되였다.민간에는 “끊이지 않는 짐바리,채울수 없는 오성”과 문수민간에는 “청정두,남욕구,노새를 묶어놓고 적구로 달리네”라는 민요가 있었다.당지에서 500여마리의 낙타를 기르는것을 보면 당년에 얼마나 번화하였는지 알 수 있다.